신생공간의 로데이터를 역사로부터 탈환하기
신생공간의 로데이터를 역사로부터 탈환하기
오정은
먼저, 이 글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하려고 한다. 이 글은 본인이 2019년 서울문화재단 서교예술실험센터와 공동운영단 7기가 주관한 ‘신생공간 연구 프로그램’에서 연구자로 참여했던 과정의 생산물 「생존을 증명하는 미술 -2010년대의 청년예술가, 신생공간, 굿즈의 담론에 더함-」(https://blog.naver.com/aquablue_0/221689792577)에 덧붙이는 것이자 약 7개월 전 해당 글을 탈고하고 나서 결과물을 모은 온라인 아카이빙 플랫폼이 만들어지기까지 지나버린 시간의 유격을 보완하기 위한 첨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 2010년대 한국 미술은 신생공간이라는 새로운 현장의 동력과 세대교체의 바람이 미술사에 쓰인 시기였다. ‘지금, 여기’라는 말에 비유할 현장의 동시대, 아니 동시간적인 언술과 시의적 감각이 미술관과 미술전문지를 위시하는 소위 제도 플랫폼에 안착되기까지 그 시간은 전례 없이 짧았으며 이 시기 특정 세대문화가 갖는 경향성에 밀접한 결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미술계 내부에 평이한 수준으로 있었던, 따라서 비판적 함의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경쟁과 표피적 수준의 미학으로부터 침탈받은 미술의 상흔을 보고 이를 우려하며 자각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그것을 완결형의 결과물로 발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비판의 지점이나 문제의 원인을 추적하는 대상이 미술을 경유하여 그 틀을 넘은 외부세계로 확장되는 만큼, 실로 방대한 정보와 각기 다른 영역의 상황을 다시 확인해야 하고, 내가 연구자로 참여한 프로그램 또한 서울문화재단이라는 제도의 지원에 빚을 진다는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생존을 증명하는(...)」은 내가 생각하는 비평이나 논문의 형식을 비껴나가, 어느 편의 형식적 글에 이르기 위해서 선행되어져야 한다고 여겨지는 자료수집과 가설 제시에 힘을 기울였다. 목차는 ‘2010년대 근시 예술의 노오력’, ‘기울어진 도시의 미끄러움’, ‘청년시대의 제도’, ‘굿즈가 유예한 것들’, ‘생존 증명의 아름다움’으로 구성했는데 이들 활자로부터 내가 파악한 신생공간 이슈를 갈음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 증후를 증언하는 인용문이 중요하다고 판단된 만큼 각주의 위치에 두지 않았으나, 본문에 기입된 인용문을 생략하고 보더라도 글이 대략 한 줄기로 이어지게끔 쓴다는 나름의 목적을 두고 진행했다.
나는 이 지면을 빌어 한 번 더 인용하고자 한다. 문혜진이 올 초 기고한 글의 일부다.
온라인 웹진 역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전시 폭증으로 인해 넘쳐나는 온라인상의 정보량에 묻혀 응집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상태다. (...) 이슈 몰이의 피로감, 인간관계나 친분으로 얽힌 업계 상황, 규정이 불가능한 동시대 미술의 거대함과 다양성, 새로운 생각을 하고 공부할 여유를 주지 않는 한국미술계의 속도 등이 어우러져, 시대를 냉철히 진단하거나 공동의 지반에 대해 논의하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해 보신에 바쁘거나 주어진 일이나 잘하자는 회피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 시장 논리가 창작, 전시, 유통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면서 전시나, 작업의 생산보다 부대행사(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연계콘퍼런스)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뺏긴다 (...) ‘참석의 경제(economy of presence)’라 일컬어지는 이런 현상은 전시의 내실을 기하기보다 이름이 알려진 자를 참석시키는 것이 홍보나 담론적 권위 면에서 쉽고도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문혜진, 「21세기에서 21세기를 돌아보다 - 비평이 목도한 21세기」, 『월간미술』, 2020.1.
나는 ‘신생공간 연구 프로그램’이 단지 신생공간의 알려진 운영 당사자를 또다시 라운드 테이블 같은 행사에 호출하여 화제를 모으고, 후발 플랫폼이 이미 양적으로 과부하인 온라인 시각언어를 더하는 데 기여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이 믿음이 지속하기 위한 큰 책임을 자문하는 동시에 조금이나마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어느덧 역사가 된 현상 담론의 벽 앞에서 마르지 않는 잉크 자국을 용기 내 쓸 수 있도록 독려한 지원에 더해 세대와 당사자 규정을 벗어난 동료의식 덕분이다. 따라서 신생공간이라는 로데이터의 연구자, 혹은 보다 다양한 관점의 비평가를 참가시키기 위한 지원의 일환으로 해당 프로그램이 기능했고, 앞으로도 기능할 수 있을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싶다.